하나님의 충돌 (대상 13:1-14)
법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 임재의 상징입니다. 법궤는 주 예수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. 그 법궤 속에는 세가지의 매우 중요한 종교적 상징물이 들어있는데 하나는 십계명을 새긴 두 돌판으로 계시(말씀)로서의 예수를 상징합니다. 또 하나는 만나를 담은 항아리인데 생명의 떡으로서의 예수를 상징하고 또 다른 하나,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부활의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. 이스라엘의 온갖 종교운동은 이 법궤를 중심하고 이루워졌습니다. 우리는 이 시간 법궤를 중심하고 벌어진 한 비극적 충돌사건을 만나보기로 합니다.
一. 충돌의 역사적 상황
이스라엘의 신정국가가 수립되기 전, 곧 사사시대 엘리 제사장 때 전장에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던 법궤는(삼상4:11~) 하나님 자신의 역사로 말미암아 블레셋에서 다시 유다본국으로 되돌아왔습니다. 이 법궤는 유다 국경 기럇여아림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 후 사울 왕조가 끝날 때까지 약 100여년 동안 그곳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. 다윗왕이 등극하여 왕국을 견고히 하고 예루살렘에 수도를 세운 다음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고자 하는 일을 시도하게 되었습니다. 다윗은 우선 모든 장수들과 의논하고 또 회중에게 묻기를 만일 너희가 이 일을 선히 여기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면 법궤를 옮겨 오자고 제의했습니다. 뭇 장수와 백성이 이 일에 동의하자 다윗은 새수레를 만들어 소로 끌게 하고 모든 백성과 함께 기럇여아림에 있는 법궤를 옮겨 오기 위해 행차를 시작했습니다. 온 이스라엘 무리는 다윗과 함께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각종 악기를 동원하여 주악했습니다. 실로 다윗 왕가의 영광이요, 유다왕국의 경사였습니다. 그런데 수레가 기돈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소들이 뛰기 시작했습니다. 그 결과 법궤가 수레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려 했습니다. 그래서 수레를 끌던 웃사가 황급히 미끄러지는 법궤를 붙들었습니다. 그 순간 웃사는 즉사하고 말았습니다. 이는 여호와께서 웃사와 충돌하였기 때문입니다. 여호와께서 충돌하시니 모든 역사행진이 중단되었습니다. 모든 인간의 환희가 절단되었습니다. 모든 인간의 계획이 중지되었습니다. 우리 성경은 이 사건을 가리켜 「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… 」(15:13)라고 했습니다. 이것이 「충돌」의 역사적 개관입니다.
二. 충돌의 이유가 무엇인가?
우리가 판단해 보기에 이 선한 일에, 이 복스럽고 영광스런 행사에 왜 여호와께서 충돌하셨을까? 1. 다윗의 인본주의입니다. 다윗은 이 역사적인 일에 여호와께 기도해보지 않고 백성들에게 먼저 의논함으로 하나님을 제2의 자리에 두었습니다. 그의 이러한 사고는 이 법궤를 옮겨오는 일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라도 장수들과 백성이 선히 여기지 않으면 행할 수 없었음을 보여줍니다. ①신의(神意)보다 인의(人意)를 앞세웠습니다. ②대세주의, 곧 다수의식을 절대화했습니다. 하나님은 인본주의와는 충돌하십니다. 우리 성경은 소수보다 다수의 의견을 존중합니다. 그러나 다수의 인본주의 보다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주장하십니다. 이 뜻에 위배 될 때는 충돌입니다. 2. 불법적인 방법입니다. ①다윗이 새수레에 법궤를 실은 것은 법궤에 대한 경외심에서 한 것입니다. 그러나 모세를 통한 율법에는 법궤를 운반할 때 반드시 사람의 어깨에 메어 운반하도록 했습니다. 법궤 운반용으로 수레를 만들어 그 위에 실은 것도 불법이었고 소들이 끌은 것도 불법이었습니다. 우리 성경에 「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 고핫 자손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찌니 죽을까 하노라」(민4:15)고 했고 「고핫 자손에게는 주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의 성소의 직임은 그 어깨로 메는 일을 하는 까닭이었더라」(민7:9)고 했습니다. 다윗은 이러한 성경 앞에 무서운 불법을 저질렀습니다. 이러한 다윗의 처사는 오늘날 소위 현대주의자들과 상통합니다.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고 화려한 인조적 행사로 대치하는 처사들입니다. ③웃사와 아히오가 수레를 몰았습니다. 이것도 불법입니다. 저들은 고핫 자손이 아닙니다. ④웃사가 법궤를 붙듦으로 신성모독의 과오를 저질렀습니다. 경건한 모양만 가지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. 경건한 능이 있어야 합니다. 그는 금지구역을 침범함으로 하나님과 충돌하고 말았습니다.
사랑하는 성도여러분!
목적이 옳고 좋은 것이라고 모두 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.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고자 하는 일은 너무나 좋은 일입니다. 그러나 그 방법이 인본주의적일 때는 그 좋은 일까지도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. 더욱이 그 방법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것일 때는 하나님은 충돌하시기까지 노여워하십니다.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뜻과 그 말씀을 좇아 행하여야 합니다. 그렇지 않을 때 결국 하나님과 충돌하는 결과가 될 뿐입니다. 다윗이 선한 일을 행하면서도 하나님과 충돌했습니다. 그 결과 신하 웃사가 죽고 인간의 축제도 결단나고 말았습니다. 하나님은 블레셋에서 다곤의 신당들과 충돌했습니다(삼상4:5). 그 결과 다곤의 신상이 엎드러졌습니다. 우리는 하나님과 충돌하면 안됩니다. 하나님은 육에 대해서도, 인본주의에서도, 불법적인 선행에서까지 충돌하십니다. 우리는 목적이 선하고 아름다우면 그 방법도 선하고 아름다워야 합니다. 우리는 주님의 나라 운동에 십자가를 메고 가는 자들입니다.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. 「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」(마16:24) 주님은 당신께서 수레 위에 실려 짐승의 힘에 끌려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. 세상 죄를 짊어지시고 가신 주님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짊어지고 오라고 하십니다.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충돌하십니다. 이 한해의 모든 행사가 하나님의 충돌함이 없게 삼가 조심하여 행합시다. -아멘-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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